거울 하나로 존재하지 않는 통증을 지우는 법
1996년 · Ramachandran & Rogers-Ramachandran · Proc. R. Soc. B
세 줄 요약
- 팔을 잃은 사람이 없는 팔에서 통증을 느끼는 현상을 환상통이라고 합니다. 만질 수 없으니 치료도 어렵습니다.
- 뇌과학자 라마찬드란은 거울을 세워 성한 팔의 반사상을 잃어버린 팔 자리에 겹쳐 보이게 했습니다.
- 뇌가 '팔이 움직였다'는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자 통증이 줄었습니다. 뇌는 실제 감각보다 눈으로 본 것을 우선합니다.
이야기
영상에서 다 담지 못한 근거를 논문으로 확인해 다시 풀어 썼습니다.
“팔이 없는데, 그 팔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사고나 수술로 팔다리를 잃은 사람 상당수가 겪는 일입니다. 환상통(Phantom Limb Pain) 이라고 부릅니다. 없는 팔이 주먹을 꽉 쥔 채 펴지지 않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감각이 몇 년씩 이어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치료가 막막하다는 겁니다. 아픈 부위가 존재하지 않으니 주무를 수도, 약을 바를 수도 없습니다.
뇌는 왜 없는 팔을 계속 그리고 있을까
팔이 사라져도, 그 팔을 담당하던 뇌 영역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뇌는 계속 “팔을 펴라”는 명령을 내보내지만, 정말 펴졌다는 응답은 영영 돌아오지 않습니다.
명령은 나가는데 확인이 안 되는 상태. 뇌는 이 어긋남을 통증으로 처리합니다.
그래서 거울을 세웠다
1996년,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의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은 놀랍도록 단순한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상자 가운데에 거울을 수직으로 세운 것이 전부였습니다.
성한 쪽 팔을 거울 앞에 놓으면, 그 반사상이 정확히 잃어버린 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 겹쳐 보입니다. 환자가 성한 팔을 펴면, 눈에는 양쪽 팔이 함께 펴지는 장면이 들어옵니다.1
그러자 뇌는 기다리던 응답을 마침내 받아냈습니다. “펴라고 했더니, 펴졌구나.”
환자들은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주먹이 풀리는 감각을 보고했습니다. 통증이 줄어든 경우도 있었습니다.
눈이 몸을 이긴다
이 실험이 드러낸 건 치료법 하나가 아닙니다. 뇌가 무엇을 더 믿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몸은 “팔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눈은 “팔이 여기 있고, 방금 움직였다”고 말했습니다. 뇌는 눈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우리가 내 몸이라고 느끼는 감각조차, 뇌가 여러 정보를 종합해 내리는 판단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서 시각은 생각보다 훨씬 강한 발언권을 갖고 있습니다.
거울 하나가 통증을 지울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근거
- 1
Ramachandran, V. S., & Rogers-Ramachandran, D. (1996). Synaesthesia in phantom limbs induced with mirrors.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263(1369), 377–386.
거울 상자(mirror box)를 처음 제시한 논문입니다. 절단 환자들의 환상 감각에 시각 정보가 어떻게 개입하는지 실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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