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지금 보는 세상은 '진짜 현재'가 아니다
1994년 · Nijhawan · Nature
세 줄 요약
- 빛이 눈에 들어와 뇌가 알아차리기까지는 대략 0.1초가 걸립니다. 그동안 세상은 계속 움직입니다.
- 1994년 로미 니자완은 움직이는 물체가 실제보다 앞서 보이는 현상을 보고했습니다.
- 뇌가 지연을 메우려 미래를 예측한다는 해석과, 나중 정보로 과거를 고쳐 쓴다는 반대 해석이 맞섭니다.
이야기
영상에서 다 담지 못한 근거를 논문으로 확인해 다시 풀어 썼습니다.
날아오는 공을 잡을 때, 우리는 공이 있는 자리로 손을 뻗습니다. 당연해 보이지만 이상한 일입니다.
빛이 망막에 닿고, 신호가 뇌를 거쳐 ’보인다’가 되기까지 대략 0.1초가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공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습니다.
앞서가는 물체
1994년, 로미 니자완은 이 문제를 드러내는 실험을 네이처에 실었습니다.
움직이는 물체와, 그 물체와 정확히 나란한 위치에서 순간적으로 번쩍이는 빛을 함께 보여줬습니다. 물리적으로는 둘이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눈에는 움직이는 쪽이 번쩍임보다 앞서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1
플래시 지연 효과(flash-lag effect) 라고 부릅니다.
해석 1 — 뇌가 미래를 그린다
니자완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뇌는 0.1초 늦게 도착하는 정보를 그대로 쓰면 항상 과거를 보게 된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물체의 속도와 방향을 계산해 0.1초 뒤에 있을 자리를 미리 그려 보여준다는 겁니다.2
우리가 ’지금’이라 믿는 장면이 사실은 뇌가 만든 예상도라는 이야기죠.
해석 2 — 뇌가 과거를 고쳐 쓴다
그런데 2000년, 데이비드 이글먼과 테런스 세즈노스키가 사이언스에 반대 해석을 냅니다.
이들은 물체가 번쩍임 직후에 방향을 바꾸거나 멈추도록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뇌가 정말 미래를 예측한다면, 예측은 빗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본 장면은 번쩍임 이후에 벌어진 일과 맞아떨어졌습니다.
즉 뇌는 앞을 내다본 게 아니라, 번쩍임 뒤 짧은 시간 동안 들어온 정보를 모아 그 순간을 나중에 재구성했다는 겁니다. 예측이 아니라 사후 판단(postdiction) 이라는 주장입니다.3
짚어둘 것
두 해석 중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이 효과를 설명하는 모형은 그 외에도 여럿 제안돼 있습니다.
영상에서 소개한 ‘예측’ 쪽 설명은 유력한 후보 중 하나이지 정설이 아닙니다.
그래서 무엇이 남는가
논쟁의 방향은 갈리지만 출발점은 같습니다. 우리가 보는 장면은 날것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
미리 그린 것이든 나중에 고쳐 쓴 것이든, 뇌는 0.1초의 구멍을 어떻게든 메워 우리에게 매끄러운 ’지금’을 건네줍니다. 그 매끄러움이야말로 가장 정교한 편집의 결과인 셈입니다.
근거
- 1
Nijhawan, R. (1994). Motion extrapolation in catching. Nature, 370(6487), 256–257.
움직이는 물체가 실제 위치보다 앞서 보이는 '플래시 지연 효과'를 보고한 짧은 논문입니다.
원문 보기 ↗ - 2
Nijhawan, R. (2002). Neural delays, visual motion and the flash-lag effect.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6(9), 387–393.
신경 지연을 뇌가 예측으로 보상한다는 입장을 정리한 리뷰입니다.
원문 보기 ↗ - 3
Eagleman, D. M., & Sejnowski, T. J. (2000). Motion Integration and Postdiction in Visual Awareness. Science, 287(5460), 2036–2038.
예측이 아니라 '사후 재구성'이라는 반대 해석입니다. 이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원문 보기 ↗
